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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을 세워준 곳, 동대문 제일평화 시장

본 인터뷰는 매장 홍보를 위해 소매 고객에게도 배포되었습니다.
2019년 9월, 동대문 제일평화 시장에 화재가 났습니다. 불은 16시간 만에 간신히 잡혔고, 그동안 200개가 넘는 상가가 전소했습니다. 밤낮 없이 상가를 운영하던 도매 사장님들은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잡히지 않는 불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 지었는데요. 10년 넘게 땀 흘리며 생업을 일궈온 매장을 하루만에 잃었지만 재기에 성공한 제일평화 시장 도매 사장님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옷에 진심인 사람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신상마켓의 브랜드 캠페인 ‘오프카메라’의 두 번째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Q.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 드려요.
안녕하세요, 동대문 제일평화 상가 3층 139호에서 팅이라는 브랜드로 패션업계 도매, 소매 사장님들을 매일 만나고 있는 오주현입니다.
Q. 동대문에서 도매업을 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패션업계에 종사한지는 10년이 훌쩍 넘었어요. 20대 초반에 소매업으로 옷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늘 내 옷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그래서 30대에 도매업을 무작정 시작했죠.
Q. 처음 도매 시작하셨을 때 어떠셨어요?
겁 없이 도매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매출은 처음부터 굉장히 높았어요. 제일평화는 낮시장과 밤시장 모두 오픈하는 곳이라서 밤낮 없이 일하고 나면 가게에서 녹초가 되기 일쑤였죠. 한번은 너무 피곤해서 가게에 양말을 벗어 던져 놨었는데 지나가던 고객이 그 양말 얼마냐고 팔라고 할 정도였어요. ‘재고’라는 게 뭔지 모를 정도로 옷이 불티나게 팔리던 시절이었죠.
Q. 그래도 젊은 나이에 연고 없이 도매업을 시작하시면서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좋은 고객 분들 덕분에 사업이 상승세를 탈 수 있었지만 그만큼 사람이 무섭기도 했어요. 소매치기를 당한 적도 있고, 도둑이 들어 다 털린 적도 있었거든요. 그래도 정말 좋은 고객 분들을 만나 서로 윈윈하는 관계로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Q. 인상 깊은 거래처나 고객들이 있나요.
10년 전쯤만 해도 온라인 쇼핑몰을 경시하던 분위기가 도매시장에는 좀 있었는데 불과 2~3년 만에 온라인몰이 확 성장하면서 주고객층이 되었어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플루언서 분들도 저희 고객 분들이시거든요. 그분들도 처음에는 혼자서 고생하며 쇼핑몰을 운영하셨는데 이제 MD들과 함께 도매에서 셀렉할 정도로 규모가 커진 것을 보면 저도 뿌듯해요. 옷에 대해 진심으로 임하고 노력하는 과정을 서로 지켜봤기에 동지애를 함께 느끼는 고객 분들이시죠.
Q. 팅과 함께 성장한 고객층이 탄탄한 듯한데요, 팅이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팅은 여성스러운 옷을 추구하면서 우아함을 잃지 않는 브랜드예요. 국내에서 어떻게 이런 디자인을 제작했냐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고퀄리티를 추구하죠. 팅만의 개성과 우아함, 여성스러움, 고급스러움이 옷에 묻어나 있는데 고객 분들이 그 점을 알아봐 주시는 것 같아요. 10년 넘게 재고를 쌓아 둔 적이 없는 것도 저희 브랜드의 자부심이고요.
뿐만 아니라 환불, 반품도 잘해드리는 편이에요. 옷이 아무리 좋아도 판매하는 사람이 불친절하면 사지 않게 되거든요. 환불을 요청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웬만하면 해드려요. 동대문이 상거래가 좀 어려운 편인데 팅은 10년 전부터 반품과 환불을 잘해주는 도매로 유명했어요. 카드 결제, 현금영수증 처리도 당연히 다 해드리고요. 저부터 상거래를 깨끗이 해서 동대문 도매 시장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Q. 팅이라는 브랜드를 구축하기까지 오랜 시간 한 길을 걸어오셨는데요. 혹시 도매업을 하며 후회한 적은 없으신가요.
지치고 힘들었던 적은 많았어도 이 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한 적은 단 한번도 없어요. 지나온 길을 돌이켜보면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제 선택이 옳았다고 확신해요. 옷은 곧 제 자존감이거든요. 그만큼 제가 만든 옷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이 있어요. 옷에 대해서는 정말 진심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이 마음을 원천으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죠.
Q. 과거 동대문과 현재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예전 동대문은 인테리어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매장이 많아 아무래도 시장 이미지가 강했죠. 주먹구구로 장사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지금은 디자인과 운영이 더 고도화되었어요. 동대문은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코로나19 때문에 손님이 많이 줄어 아쉬워요. 과거에는 월, 수, 금마다 전국에 있는 소매 사장님들이 대형버스를 타고 올라와 동대문에서 쇼핑을 했는데 이제는 주 1회로 줄었거든요. 신상이 나오는 횟수도 그만큼 줄어들었죠.
Q. 10년 넘게 동대문에서 사업을 운영하셨는데요. 오랜 시간 동대문에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제일평화 시장 화재 사건이죠.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너무 아파요. 2019년도 9월 22일 제일평화 상가 전체에 불이 났어요. 당시에 제가 둘째를 출산한지 얼마 안되어서 쉬고 있었는데 불이 났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달려갔어요. 상가 전체가 불에 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데… 하…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먹먹해져요.
제일평화 시장 상인 분들이 다 길바닥에 나앉아서 엉엉 울고 있었어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다들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멍하게 상가가 불타는 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죠. 평생을 일궈온 삶의 터전을 하루 아침에 잃게 되어 너무 고통스럽고 상실감이 커서 우울증으로 고생한 분들도 계세요. 다행히 상가를 다시 빠르게 얻어 운영을 시작했지만 불과 3개월 후에 코로나19가 터지고 말았죠.
화재 당시의 제일평화 상가 내부 모습
화재 당시의 제일평화 상가 내부 모습
Q. 악재가 연달아 와 정말 힘드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화재 후 코로나19가 닥쳐 막막하던 찰나에 신상마켓이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어요. 직원들에게 신상마켓에 상품을 올려보자고 한 게 2020년 4월이었는데, 이제 신마 없이 어떻게 사업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장 든든한 존재예요. 신상마켓에 광고를 하니까 체감하는 것만 10배 이상으로 매출이 올랐거든요. 다른 도매들도 광고를 할까 겁날 정도예요(웃음). 이제는 매출의 일정 부분을 신상마켓 광고 비용으로 아예 빼놓고 있어요. 직원들 월급처럼요.
Q. 그렇다면 신상마켓을 통해 사업적으로 도움을 받으신 적이 있나요?
동대문에서 매장을 많이 운영할 때는 최대 6개까지 확장했었는데 두 달 전에 ‘팅’ 한 개만 남겨두고 오프라인 매장을 모두 정리했어요. 신상마켓을 믿고 내린 결정이죠. 신상마켓이 한 명의 직원이라면 제일 월급을 많이 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제일 든든한 영업사원이거든요.
‘신상마켓 주문이 도착했습니다’ 하는 소리가 요즘 삶의 활력소예요. ‘신마 보고 왔어요’라고 이야기해주시는 소매 사장님들도 많으시고요. 신상마켓을 통해 매출뿐만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도 올라간 것을 톡톡히 체감하고 있어요.
Q. 신상마켓이 동대문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다고 생각하시나요?
예전에는 오프라인 매장에만 의존했다면, 이제는 신상마켓 덕분에 매장 위치나 개수에 상관없이 상품 디자인과 퀄리티에 집중할 수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제일평화 화재, 코로나19 등 악재가 겹치면서 정말 도매를 이제 그만둬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평생 해왔던 업을 그만둘 수도 있었던 상황에 신상마켓을 만나 매장이 1개로 줄었어도 매출은 오히려 늘었어요. 제겐 정말 신상마켓이 복덩이에요. 가장 든든한 홍보대사이자 동업자이자 직원 같은 존재죠. 신상마켓에 투자하라고 하면 전 진심으로 투자할 생각도 있어요(웃음).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얼마 전 매장을 이전했는데 고객 분들이 우리 브랜드가 없어진 줄 알고 문의를 정말 많이 해오셨어요. 팅처럼 고급스럽고 우아한 여성복을 어디서 사, 하시면서요. 정말 감사하고 뿌듯하더라고요. 감사한 마음으로 고객 분들이 팅 하면 떠오르는 그런 디자인을 꾸준히 선보이고 싶어요. 10년 전에도, 지금도 고객 분들 마음 속에 팅이 No.1 브랜드가 될 수 있도록이요.
Q. 마지막으로 사장님에게 '동대문'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동대문은 제 자존감이에요. 전 소극적인 성격에 앞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팅이라는 브랜드가 엄청나게 사랑을 받으면서 제 자존감도 덩달아 올라갔거든요. 30대 초반의 젊은 아가씨가 동대문에 들어와서 얼마나 버티겠어 하는 시선들도 있었는데 이제 그 분들과 친하게 지낼 정도로 사회성도 생겼어요.
동대문 도매는 아무나 들어오기 쉽지 않고, 10년이라는 세월을 버티는 건 더 쉽지 않은 곳이에요. 거기서 10년 동안 팅을 가꿔온 제 자신이 스스로 대견해요. 다른 건 몰라도 동대문 이야기만 나오면 자신 있게 나서서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동대문에 있으면서 어려운 과정을 견딜 만한 강력한 무언가가 내 안에 있다고 믿게 되었으니 동대문이 저를 키운 셈이죠. 동대문은 곧 오주현, 제 자신이라고 할 수 있어요.